계엄령을 겪으며, 가지고 있던 아이디어가 다시 떠올라 좀 더 구체화하여 생각해 보았다.

 

민주주의의 문제점은 국가 내에서 여러개의 이익관계가 얽히며 서로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것에 있다.

그리고 결국 다수의 이익이라는 명분을 가진 단체가 승리하며, 그 외의 단체는 불이익을 얻을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정치활동을 하고, 서로간의 타협하며 절충안을 찾아가려 한다.

 

하지만 한정된 자원을 가진 현실 세계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반드시 손해를 보게 된다. 이는 민주주의의 한계가 아닐까?

 

그럼에도 민주주의가 현재 많이 선택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민주주의를 생명체로 비유한다면, 개체 안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점들을 합리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민주주의일 것이다.

세포 A와 B가 싸울 때,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모두를 위한 선택이 A에게 혈액을 공급하는 것이라면, B대신 A에게 혈액을 공급하는 선택을 하며, 다수가 이익을 보는 선택을 한다.

 

하지만 다른 독재 정치, 왕권 제도는 어떨까? 

결정권자의 판단 하에 모든 결정이 일관되게 일어나므로, 매우 효율적인 처리가 가능해진다. 개체 내에서 집단간의 싸움이 존재하지 않으며, 쉽게 병든 팔다리를 잘라내어 개체의 생존을 도모할 수 있다. 때문에 이상적인 철인정치에서는 가장 번성하기 좋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그 말로에는 개체가 번성하기 위한 선택이 아닌, 결정권자 자신만을 선택을 하기에 개체가 점점 죽어가며 반란이 일어난다. 예를 들자면 도파민을 위해 음식을 폭식하거나 마약을 하며 행복하지만, 점점 지방세포가 증가하고 암세포가 생성되는 등 몸은 점점 죽어나간다. 그리고 결국 국가라는 개체가 죽으며 끝이 난다. 

 

이처럼 개체가 죽어가는 독재와 달리, 민주주의는 개체 내에서 끝없는 싸움이 일어나지만, 결국 결정권자는 개체를 최대한 건강하게 지속하기 위한 결정을 내리기에 국가라는 개체가 오래 지속될 수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기에 현대사회에서도 많은 선택을 받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 속에서 점점 머리가 아닌, 팔다리와 같은 부속지에서 결정권이 생기게 되면 어떻게 될까? 과연 개체가 건강하기 위한 선택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부속지에서 성장한 일부가 몸을 죽이지 않고, 오히려 머리를 집어삼키는 생명체가 있는가? 과연 기존 개체를 남기면서 다시 살리는 선택 자체가, 생물학적으로 이익이 되는 행동일까? 암과 같은 질병은 개체를 죽이고, 외부에서 들어온 바이러스, 기생충, 병균 또한 결국 개체를 죽일 뿐, 개체를 대체하지 않는다. 과연 머리가 사라진 개체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가? 다른 개체로써 새롭게 존재할 수밖에 없는가?

 

공산주의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사회주의는? 

공산주의는 모든 노동자가 생산시설을 공유하는 것이 주된 이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회주의는 공산주의를 실현하기위한 하나의 방법으로써 국가 주도하에서 공산주의를 이룩한다.

하지만 결국 생산성하락과 독재정치로 이어지는 문제점이 있기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어째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가?

한정된 자원을 모두에게 제공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한계, 생산시설을 나눌 수 없다는 한계, 독재가 일어나기 쉬운 환경?

모든 문제점은 바깥에서 오는가? 타개체와의 경쟁에서 밀려남에서 존재하는가?

어째서 공산주의는 이렇게 해석하기 특히 어려운 것이지?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생명체가 존재할까?

 

이러한 현상들을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예를 찾아서, 정치 이념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렇게 본다면 지금까지의 정치이념이 발달해온 과정을 해석하고, 미래를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모든 단체는 하나의 생명체와 비슷한 특징을 가진다.

결정권을 내리는 머리가 있고, 실제로 행동하는 팔다리가 존재한다.

팔다리가 결정을 내리면 안되며, 팔다리가 직접 움직여줘야 단체가 돌아갈 수 있다.

머리는 자신만을 위한 선택을 하면 안되며, 버릴 것을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머리와 팔다리가 이상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더라도, 외부의 압력에 의해 개체는 결국 사망할 수 있다.

 

결국 독재, 민주, 공산 등 모든 정치 이념의 한계는 현실적인 문제에서 발생하지는 않는가?

프로스트펑크와 같은 혹독한 환경 속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가? 민주주의는 풍족한 사회에서 피어나는 꽃은 아닌가? 많은 것을 포기해야하는 환경이 닥쳤을 때, 과연 민주주의는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어째서 역사는 왕권제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 정치 이념이 발달하였는가? 발달이란 표현은 진화와 같이 옳은 표현이 아닐 수도 있다. 다만 거의 모든 문명권이 왕권부터 시작했다는 것은 거의 틀림이 없을 것이다. 자연의 위협 앞에서 사람들은 두려움과 굶주림에 떨 수 밖에 없었다. 이는 곧 하나의 목표를 가진 철인 정치, 왕권이 선택되는 압력으로 볼 수 있지 않는가? 어째서 그리스는 고대시대에 민주주의를 선택했는가? 그리고 누구를 위한 민주주의 였는가? 그리스의 대부분의 인구는 노예였으며, 투표권은 남성에게만 있었다. 노예들의 희생을 통한 풍요 속에서 민주주의가 피어나지 않았는가? 동등하진 않지만, 서로가 풍요롭고 각자의 힘을 가진 남성들 사이에서, 자신의 자산을 지키기 위한 정치행위가 아니었는가? 오늘날의 시대에서 우리는 과거와 비교하여 현격하게 차이가 나는 풍요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 덕분에 민주주의가 선택된 것은 아닌가?

 

민주주의의 대의 앞에서, 개인은 언제든 피해를 감수하게 될 수 있다. 아니, 이건 민주주의만의 문제는 아니지 않는가? 왕권이 자신을 축출하려 한다면 반란을 일으켜 자신이 새로운 왕조를 세웠다. 민주주의에선 개체 전체가 아닌, 반대편의 작은 단위의 단체와만 싸우면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기업의 이익을 위해 환경을 오염시키는 일, 담합을 통해 가격을 올리는 일 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더 작게, 개인의 일로 바라본다면, 자신의 아파트 주변에 혐오시설이 들어오는 것은 나의 자산을 크게 하락시킬 수 있기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

결국 자신의 이익을 위해선 개체에게 손해를 입히는 방법밖에 없는 것인가?

 

민주주의는 서로 간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갈등에서 빚어지는 전체의 손해를, 풍요로운 사회속에서 생산되는 부를 통해 감당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기에 혹독한 환경 앞에선 민주주의가 선택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 다음은 무엇일까?

 

생명체가 번성하기 위한 원리는 무엇인가? 생명체는 어째서 뇌를 만들었는가? 그리고 이는 환경과 경쟁에 대한 압력이 가장 크게 작동하는가?

생명체의 원리를 깨닫는다면, 다음 시대를 알 수 있을까?

 

 

 

(학문적 흥미, 호기심, 아이디어입니다. 특정한 정치 이념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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